삼척 두타산 자락 천은사는 고요한 숲의 풍경이 마음에 머무는 사찰이다. 고려시대 이승휴가 은거하며 역사서 ‘제왕운기’를 편찬했던 곳이기도 하다. 부처님 오신 날(5월 5일)을 앞두고 천은사를 방문, 손님 맞이 준비에 분주한 천은사 주지 동은스님(사진)을 만났다. 본지 도민시론 필자이기도 한 동은스님은 감성칼럼으로 많은 독자들의 인기를 얻는 ‘글쟁이’다. 월간 해인 편집장과 불교신문 논설위원을 역임한 그가 최근 산문집 ‘꽃비 오니 봄날이다’를 펴냈다. 지금 어떤 세상인지, 몇가지 질문을 던지자 스님의 ‘행복론’이 90분간 이어졌다. 바쁜 일상에서 조금은 벗어나보고자 춘천에서 삼척으로 갔던 길은 멀게만 느껴졌지만, 사찰에서 나오는 길은 한결 가벼웠다.

-산문집을 내셨다. 글을 쓰는 것이 수행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조계종 교육부장을 했던 진광스님(홍천 출신)과 ‘사소함을 보다’라는 주제로 각각 연재한 글을 엮어서 펴낸 책 ‘사소한 것은 없다’에 못 실은 글을 여기에 수록했다. 수행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습관이고 연습이다. 글쓰기도 비슷하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들을 잠깐 멈추고 생각해보는 일이다. 예를 들어 찻잔을 주제로 쓴다면 찻잔이 만들어지게 된 인연을 생각하고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예전에는 참선만 했지만 이제는 명상의 종류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방법이 다양하니 각자에게 맞는 방식을 추천한다.”
-출가 계기는.
“출가 전에는 교회를 다녔다. 오로지 공부하고 출세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이른 나이에 혈액암에 걸렸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가혹한 벌을 내리시는지 운명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남들이 가던 길에서 빠져 나오니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법정스님 밑에서 출가하고 싶었는데, 제자를 안받는다고 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오대산 월정사로 갔다.”
-계엄 이후 현재 대선국면까지, 세상이 너무 날카롭게 느껴진다.
“내 생각과 다르면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갈등 비용이 너무 많다. 물질문명에 익숙해지고, 정신적 가치가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극단으로 갈라진 상황에서는 중재자가 필요한데 국가간 외교도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사회는 중재자가 없는 것이 문제이고, 중재를 해도 안 듣는 것이 문제다. 대선 국면을 가운데서 보면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둑판도 당사자가 아니라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잘보이는 법이다. 양동이 흙탕물도 가라앉혀야 하듯, 마음을 가만히 가라앉히고 천천히 보는 방법이 필요하다.”
-멈추고 싶어도 속도가 너무 빠른 고속도로에 와 있는 것 같다.
“관성이랄까, 궤도에서 멈추면 탈락이다. 차를 높은 속도로 몰고 가면 위험하지 않은가. 몸이 차이고, 정신이 운전자인데, 서행을 하면 그나마 차만 좀 부서지고 크게 다치치 않는다. 여기서 멈춰버릴 수는 없지만 너무 과속할 필요는 없다. 휴게소도 들르고, 국도로도 가보자.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더 여유가 생길 것이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몫이 있는 것이다. 기도는 좋은 영향을 주지만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내 능력을 알아차리고, 노력한 결과를 받아들였으면 한다. ”
-행복에 대해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닌가.
“지금 당장 살기 힘든데, ‘편한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이럴 수가 있다. 그렇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목적, 행복을 생각했으면 한다. 평범한 일상이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는 그토록 소중한 것이다. 핵심은 지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벽에 막혀있다면, 조금 돌아가는 것도 권한다. 인생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서로를 인정하기 힘들 때, 예를 들어 흉악범을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가.
“난감한 질문이다. 당사자가 되면 망설이게 된다. 30년간 키웠던 진돗개 ‘보리’가 있었다. 나이가 들어 백내장이 들었는데, 내가 맹견안내인이 된 셈이다. 어느날 이웃 도둑고양이가 계속 밥을 훔쳐먹더라. 보리는 본능적으로 밥을 지키려 했지만 엉뚱한 곳을 바라보며 짖어댔다. 우리 삶도 그런 것 같다. 보리 입장에서는 억울한데, 고양이 입장에서는 밥을 훔쳐먹는 것이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눈 먼 보리인가 도둑고양인가, 각자의 입장이 있다는 얘기다. 흉악범의 비유를 들었지만 대한민국이 이념으로 너무 갈라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대, 성별, 지역 등 엉뚱한데 온갖 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대한민국이 성숙해가는 과정이다.”
-불행하지 않다면, 꼭 행복에 집착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맞다. 행복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다. 사람들은 행복을 저 멀리에서 가져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 일 없는 것이 행복이고, 온 일상에 깔려있다. 숨을 쉬고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빨리 깨달을수록 행복해진다. 죽을 때까지 일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파도를 타는 방법을 배우며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지금 행복하시라.” 김진형 기자
강원도민 일보/ 김진형 기자
출처 : https://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308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