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0살 넘은 고려 불탑이 정수리에서 천상의 세계를 아로새긴 걸작 공예품을 내려놓았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기슭의 고찰 월정사는 최근 절의 상징이자 12세기 고려 전기 불탑의 최고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국보 팔각구층석탑 맨 위 상륜부 금속 장식물(장엄물)을 떼어내 보존 처리를 끝내고 상설 전시에 앞서 언론에 공개했다. 절집의 옛 탑 꼭대기 장엄물을 완전히 분리해 내려놓고 따로 소장해 전시하는 건 처음이다.

이 상륜부 장식은 고려 시대의 빼어난 불교공예와 금속가공술 수준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재 국내의 고대·중세 불탑들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꼭대기 장식물이란 점에서도 희귀하다. 9층의 탑신 위에 놓인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등 상부 석재 장엄물과 그 위에 덮개처럼 부착된 구리판 장식물 보개·수연, 우주, 부처의 진리를 상징하는 둥근 원 모양의 용차·보주, 그리고 이 장식재들을 꿰는 긴 철 기둥인 찰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황금빛으로 도금된 구리판 표면을 무수히 두들기는 타출기법을 구사해 산·구름·연꽃잎·어자(물고기알) 무늬 등을 촘촘하게 돋을새김한 보개와 불꽃 모양 구리판에 뚦음 무늬를 낸 수연은 고려 불교예술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절 대웅전 정면에 선 석탑은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로 상륜부 장식물의 부식 현상이 심화되면서 2019~2024년 상륜부 해체 보수 작업이 이어졌다. 문화유산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기술지도위원회는 2년간의 논란 끝에 상륜부 금속 장엄물 훼손 상태가 심각해 그대로 꼭대기에 놓아둘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뒤 2021~2024년 3년의 공정을 거쳐 상륜부 장엄물을 탑 꼭대기에서 내려 보존 처리한 뒤 절 성보박물관에서 수장·전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신 탑 꼭대기에는 지금 장인들이 새로 만든 보개·수연 등의 상륜부 장엄물을 설치했다.


이런 과정이 올해 상반기 끝나면서 오는 25일부터 복원한 옛 상륜부 장엄물을 성보박물관에서 상설 전시로 선보인다. 지난 900년간 15m 넘는 높이의 탑 꼭대기에 있어 아래서 희미하게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던 장엄하고 우아한 상륜부의 세부 모습을 샅샅이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900년 전 고려시대 리벳 등으로 판을 박아 보개판을 보수한 흔적과 1970년 1차 보수 당시 볼트·너트와 황동판을 잘라 용접하며 보개의 꽃 장식을 땜질했던 수리의 역사까지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작업을 맡았던 보존과학 기술자 김선덕 서진문화유산 대표는 “월정사 탑의 상륜부가 이 땅의 고대 중세 불탑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물이기 때문에 이 불탑에서 분리해 전시·소장하는 것은 전무후무한 사례가 될 것”이라며 “작업 내내 상륜부 장엄물을 만든 고려 장인들의 숨결과 손길을 만날 수 있어 영광스럽고 행복했다”고 털어놓았다.


절 쪽은 앞으로 탑의 해체·복원 과정에서 드러난 내용들을 토대로 별도의 기획전과 전문가 학술대회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평창/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출처 :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230706.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