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강원 평창군 월정사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강원 평창군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
강원 평창군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

절에 가면 사자를 타고 칼을 쥐고 있는 보살상, 흰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살상들을 보게 된다. 관음전, 지장전 등에 모셔져 있는 관음보살, 지장보살과 함께 불교의 4대 보살로 불리우는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과 ‘실천(行)’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독립된 불전에 모셔져 있는 관음보살 지장보살과는 달리 부처의 협시보살로 법당의 삼존불을 주로 구성하고 있다. 특히 문수보살은 오른손에는 중생의 모든 장애와 번뇌를 잘라 없애버리는 지혜를 상징하는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쥐고 있으며 많은 복덕과 반야지혜(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고 있다.

오대산 월정사 안내도
오대산 월정사 안내도

월정사가 자리 잡은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은 산 전체가 반야 지혜의 상징, 즉 문수성지라고 한다. 월정사 바로 위쪽에 있는 상원사에는 조선 세조가 보았다는 문수동자를 본뜬 상도 있다.

오대산(五臺山)은 643년 자장율사가 문수보살 신앙의 중심지인 중국 오대산(우타이산)에서 수행하던 중 신라에도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지가 있으니 찾아보라는 계시를 받고 찾아나서 지리적 유사성에 따라 현재의 오대산을 불교 성지로 정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동대 만월산(滿月山)에 1만 관세음보살, 남대 기린산(麒麟山)에 8대 보살과 1만 지장보살, 서대 장령산(長嶺山)에 무량수여래(아미타불)와 1만 대세지보살, 북대 상왕산(象王山)에 석가여래와 5백 아라한, 중앙 풍로산(風爐山)에는 비로자나불과 1만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지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자장율사는 오대산 중심 계곡에 월정사를 창건했고, 643년에는 비로봉 남사면 중턱(중대사자암)에 석가모니 부처의 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문수보살의 도량(道場)으로 자리매김했고 이후부터 오대산은 매우 신성한 산악지대로 여겨져 왔다.

강원 평창군 오대산 입구의 월정사 가는 길
강원 평창군 오대산 입구의 월정사 가는 길

현재 오대산에는 월정사와 상원사 외에도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중대 사자암이 자리잡고 있다.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 비로봉(최고봉, 1563m 중대), 동대산(1434m 동대), 호령봉(1561m 서대), 상왕봉(1437m 북서), 두로봉(1422m 북동)이 월정사와 상원사 주변을 감싼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1563m)은 ‘어둠을 밝히는 깨달음의 빛’을 의미하는 비로자나불(법신불)에서 그 이름도 연유됐다.

1975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오대산은 강원도 강릉, 홍천, 평창에 걸쳐 있으며 백두대간의 중간 지점인 설악산과 태백산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산 북쪽은 북한강(내린천) 유역이며, 남쪽은 남한강(오대천) 유역으로 백두대간과 한강기맥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대산의 후광을 듬뿍 받고 있는 월정사는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은 신도와 관광객, 등산객들이 찾고 있다.

 

금강경 독송회 월정사

월정사 적광전 앞마당의 영가천혼수륙무차대법회 준비 모습.
월정사 적광전 앞마당의 영가천혼수륙무차대법회 준비 모습.

이슬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월정사 적광전 앞마당에는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한 ‘영가천혼수륙무차대법회’ 준비로 부산하다. ‘금강경 봉찬 기도회’에서 주최한다고 한다.

월정사는 자현스님이 진행하는 ‘금강경 독송 철야 정진’, ‘신묘장구 대 다라니’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불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월정사 출가학교
월정사 출가학교

월정사는 스님이 되기 위한 행자생활을 한 달 동안 직접 체험하는 ‘출가학교’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다스리는 시간을 갖는 프로그램도 있고 이를 축소한 일주일 낭만출가학교도 있다고 한다.

주말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영가 수륙대법회’ 때문인지 아침부터 많은 불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금강경(金剛經)은 현장법사(602~664년)가 번역해 삼국시대부터 전래된 대승불교의 대표적 경전으로 ‘공(空)한 지혜’ 사상을 담고 있다고 한다.

국립 조선왕조 실록박물관
국립 조선왕조 실록박물관

월정사를 들어가는 주차장 옆에는 특이하게도 서울에나 있음직한 ‘국립 조선왕조 실록박물관’ 건물이 월정사 성보박물관 옆에 자리하고 있다.

국립 조선왕조 실록박물관 전관개관
국립 조선왕조 실록박물관 전관개관
국립 조선왕조 실록박물관 특별전 ‘오대산사고 가는 길’
국립 조선왕조 실록박물관 특별전 ‘오대산사고 가는 길’

월정사가 수호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원본을 전시하기 위해 국립 박물관으로 2023년 11월 개관했다.

국립 조선왕조 실록박물관에 보관 중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원본
국립 조선왕조 실록박물관에 보관 중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원본

오대산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등 왕실의 귀중한 기록을 보관하기 위해 설립된 조선시대 4대 사고(史庫) 중 하나가 1606년 창건됐는데, 월정사는 사고 수호 사찰로서 실록을 지켜서 일본의 침략에도 불타지 않고 남은 유일한 사고가 됐다.

오대산 사고 설명 안내판
오대산 사고 설명 안내판

그래서 이 장소는 화재, 풍수, 수해에도 견딜 수 있는 길지로 여겨졌는데 일제강점기인 1913년 이 사고에 보관돼 있던 많은 실록과 의궤 일부를 일본이 가져갔다.

국립 조선왕조 실록박물관에 보관 중인 의궤
국립 조선왕조 실록박물관에 보관 중인 의궤

2006년 이후 불교계를 중심으로 환수운동을 펼쳐 2011년과 2017년에 실록과 의궤를 반환받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됐던 것을 박물관을 개관하면서 110년 만에 원 소장처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월정사 성보박물관
월정사 성보박물관

성보박물관에는 한국 전쟁을 견디고 남았던 팔각구층석탑 앞에 공양하는 모습의 석조보살좌상(국보 제48-2호)이 보관돼 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그 위엄이 대단하다.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인 석조보살좌상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인 석조보살좌상

석조보살좌상은 팔각구층석탑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게 배치돼 있는 1.8m 크기의 석조불상이다. 팔각구층석탑 앞에는 복제품 보살상을 모셔두고 원본은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약왕보살 또는 문수보살로 추정하는데 몸통에 비해 머리가 큼에도 불구하고 보살이 앉아 있는 자세도 안정감 있게 잘 구성돼 있다.

월정사 성보박물관 내 문수동자좌상 사리
월정사 성보박물관 내 문수동자좌상 사리

상원사에 세조에 의해 조성된 문수동자좌상과 그 안에서 발견된 사리 3과도 의미 있게 살펴볼 수 있었던 전시물이다.

월정사 일주문
월정사 일주문

월정사 일주문에서 금강교까지 1㎞ 남짓한 전나무 숲길은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산문(山門) 역할을 한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 [유튜브 채널 정용식의 사찰 기행 캡처]
월정사 전나무 숲길 [유튜브 채널 정용식의 사찰 기행 캡처]

이 길 주위로 수백 년 된 전나무를 비롯해 1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옆으로 계곡이 흐르고 있어 멋진 광경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월정사 계곡
월정사 계곡

자동차로 월정사 가까이 가게 되면 걸어볼 수 없는 길인데, 이른 아침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으니 청량감이 그만이다.

천왕문
천왕문

완연한 가을임을 알리듯 전나무 숲길 끝자락 금강교 주변 단풍은 물이 오를 대로 올라있었다.

천왕문 단풍나무
천왕문 단풍나무

하지만 천왕문 안에 단풍나무는 쉼이 필요한 듯 이미 낙엽을 떨구고 있었다.

 

월정사의 팔각 구층석탑

월정사 전경
월정사 전경

월정사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내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로서 강원도 중남부에 있는 60여 개의 절을 관리하고 있다.

643년(선덕여왕 12)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의 감응으로 얻은 부처님 사리와 대장경 일부를 가지고 돌아와서 통도사와 함께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자장이 창건할 당시에는 임시 암자에 불과했다고 하며, 그 뒤 여러 스님들이 중창하면서 점차 사찰다운 면모를 갖추게 됐다.

월정사 개산조각
월정사 개산조각

월정사는 고려 충렬왕 33년(1307년), 조선 순조 33년(1833년)에 화재로 사찰 전체가 타버려 다시 재건했는데 한국전쟁 1·4 후퇴 시 다시 우리 국군의 손으로 불태우는 비운을 겪게 된다.

이 사건으로 불에 타거나 녹아내리는 것들은 모두 사라졌으며 남은 거라곤 화강암으로 만든 석탑과 전각의 기단, 석조보살좌상 하나 뿐이었다.

적광전
적광전

지금의 건물은 1964년 이후로 새로 중창했으며 가람 배치는 팔각구층석탑을 둘러싸고 부속 건물이 세워져 있다.

사찰의 중심전각은 석가모니불상을 모신 적광전(寂光殿)이다.

적광전 안내판
적광전 안내판

일반적으로 ‘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이지만, 군사정권 시절 고승으로 이름난 탄허스님(1913-1983)이 석가모니가 비로자나불과 둘이 아니라고 주장해 ‘적광전’ 이름을 그대로 붙였다고 한다.

적광전 법당의 석가모니불상
적광전 법당의 석가모니불상

고구려 계열의 석탑양식이라고 하는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고려전기 다각형의 다층(多層)석탑이 우리나라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하게 되는데, 그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팔각구층석탑은 그 자체 형상도 화려하고, 풍경이나 머리장식 등에서 드러나듯이 고려 귀족문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탑은 높이 15.2m로 결코 작지 않고 위로 갈수록 크기가 줄어드는 일반적인 탑의 모양과는 달리 아래층 지붕과 위층 지붕의 크기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각 층 간의 높이나 비례가 조화롭게 디자인돼 균형감이나 안정감이 느껴진다.

1층 탑신 4면에 조그만 감실(龕室, 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마련해 뒀고 가볍게 들려있는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풍경이 달려 있다.

한국전쟁의 화마에도 기적에 가깝게 팔각구층석탑의 청동으로 만든 풍경 장식이나 탑의 맨 꼭대기 지붕돌 위에 있는 금동으로 만든 머리장식의 형태가 완벽하게 남아 있었다고 한다.

1970년 전면 해체수리 중에 탑이 건립될 때 넣은 여러 유물들(사리장엄구)이 탑 내부에서 발견돼 보물 제1375호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사리장엄구로 지정됐다.

팔각구층석탑 앞 석조보살좌상 복제품. 원본은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팔각구층석탑 앞 석조보살좌상 복제품. 원본은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팔각구층석탑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 무언가를 탑에 바치는 보살의 모습을 가진 1.8m 크기의 석조보살불상은 원본은 박물관에 보관하고 복제품을 모셔 놨다.

월정사 성보박물관의 석조보살좌상 원본. 두 손 사이 구멍이 뚫려 있다.
월정사 성보박물관의 석조보살좌상 원본. 두 손 사이 구멍이 뚫려 있다.

전면에 모인 두 손 사이로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여기에 탑에 바치는 무언가를 꽂아 두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사람 또는 보살 형태의 공양상이 탑을 향해 앉아 있는 모습은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앞의 석조보살상에서도 봤고,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보물 제87호) 등도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외에선 상당히 드문 형태라고 한다.

월정사 템플스테이
월정사 템플스테이

월정사에서 9㎞ 정도 더 올라가면 조선 세조가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을 때 고양이가 도포자락을 잡아당긴 덕분에 자신을 죽이려던 자객을 발견해서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 상원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종(국보 제36호)과 전설이 깃든 문수동자상이 있다.

월정사와 달리 6·25 참화 속에서도 한암스님 덕분에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사찰이다. 상원사 위 중대 사자암은 초기에 진신사리를 모신 우리나라 4대 적멸보궁 중 하나이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출처 :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620466?ref=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