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수성지 오대산 월정사의 ‘멍청이’를 자처하며 하심의 자세로 한평생 수행과 전법에 진력한 조계종 원로의원 자광당(慈光堂) 원행대종사(遠行大宗師)가 적멸의 길을 떠났다. 영결식장에 운집한 2000여 사부대중은 대종사의 가르침을 그리워하며 “이제 ‘멀리 가는 이(遠行)’가 아닌 화엄 세계에 ‘이미 도착한 이’로 영원한 평온을 누리길” 간절히 발원했다.
자광당 원행대종사의 영결식이 3월16일 오전10시 오대산 월정사 화엄루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됐다. 법당은 대종사의 마지막을 함께하려는 사부대중으로 가득 찼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야외 좌석 또한 대종사의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불자들도 자리를 메웠다.

1942년 전남 신안군에서 출생한 자광당 원행대종사는 희찬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0년 월정사에서 희찬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4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각각 수지했다. 원행스님은 한암-탄허-희찬스님으로 전해지는 법맥을 이어 월정사 어른으로 역할을 해왔다. 조계종 제10대 중앙종회의원을 비롯해 초심호계위원 등을 역임하며 종단 발전에 이바지했다.

이와 함께 대전 자광사, 동해 삼화사, 원주 구룡사 등에서 주지 소임을 맡으며 중창 불사와 가람 수호, 그리고 전법에 힘을 쏟았다. 특히 삼화사 주지 시절엔 노사나철불을 복원했고, 구룡사 주지 재임 시절엔 원주불교대학을 개설·운영 등을 통해 지역 포교에도 앞장섰다. 아울러 원주교도소 등지에서 20여 년간 재소자들에게 부처님 법을 전하며 교정교화에 나서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로 2023년 법무부장관상을 수상했다.
10·27법난피해자모임 회장 소임을 맡아 아픈 역사의 진정한 치유를 위해 법난의 실상을 널리 알리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진력해왔다. 2018년 조계종 최고 의결 기구인 원로회의 의원으로 선출됐다. 이듬해 조계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스님은 세수 여든이 넘어서도 “수행자는 일상의 질서가 무너져서는 안된다”며 매일 새벽 예불과 경내 탑돌이를 거르지 않았다. 월정사 선덕으로 후학들을 지도해오다 지난 3월12일, 법랍 57년, 세수 85세로 원적에 들었다.
영결식은 명종5타가 울려 퍼지며 시작됐다. 원행대종사를 청해 모시는 영결법요가 이어지는 가운데 호상(護喪)인 청우대종사가 헌향을, 원로의원 법등대종사가 헌다를 각각 올렸다. 이어 호계원장 정묵스님과 상좌대표 법장스님이 영단에 꽃을 올리며 예를 다했다.



이날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원행대종사의 삶을 기억하고 기리며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총무원장 스님은 추도사를 통해 “대종사께서는 오대산 근대 삼화상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과 포교, 도량불사와 화합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다”며 “오대산에서 두타산으로, 두타산에서 치악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물줄기를 따라가며 골짝마다 마을마다 지역불교와 지역문화를 밝히려는 대종사의 정성과 발걸음이 세월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음을 오늘에서야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고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이어 총무원장 스님은 “특히 10·27 법난의 고초 속에서도 유위법에 집착하지도 않으시고 무위법에 머무르지도 않으셨고, 치우침 없는 넓은 포용력으로 진정한 화합의 길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시며 그 바람직한 길을 찾기 위해 만행의 길도 고행의 길도 조금도 마다하지 않으셨다”며 “긴 사색 끝에 남겨 놓으신 글들은 이제 문자 사리(舍利)가 돼 우리 사회에 맑은 청량감을 더해 주었고, 나눔과 소통을 위한 하심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의지처가 됐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총무원장 스님은 “동해바다의 흰 구름이 태백산맥을 넘어 다시 오대산으로 돌아오듯이 혹여 아직 이루지 못한 원력이 남아 있다면 속환 사바하시어 그 뜻을 다시 이루시길 간절히 발원한다”며 “오늘 대종사의 진영 앞에 맑은 차 한 잔 올리니 부디 기쁜 마음으로 흠향하시고 남겨진 우리들이 그 뜻을 이어 갈 수 있도록 조용히 지켜봐 달라”고 청했다.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는 원로회의 수석부의장 보선대종사가 대독한 법어를 통해 “백번의 싸움 성공하여 오래도록 태평하니/느긋하고 편안한데 누가 수고로이 장단을 따르리오/옥 채찍에 황금 말 종일 한가롭고/밝은 달 맑은 바람 일생이 부귀로네”라며 “산승이 금일 대종사 각령전에 일주청향의 법공양을 올리오니 진리의 삼매락을 누리소서”라고 추모했다.
특히 종정예하 성파대종사는 “대종사께서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하시어 한암 탄허 만화스님의 법통을 이어 수행하셨다”며 “월정사 대웅전 중창을 비롯해 삼화사 자광사 등의 가람 수호와 불교 중흥을 위해 정진하셨으며, 재소자 등의 교화에도 힘쓰시며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모범을 보이신 이 시대의 선지식”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종정예하 성파대종사는 “둥근 구슬 구멍난 데 없고/ 큰 옥돌 다듬음 없도다/ 도인을 귀히 여김은 모나지 않아서이니/긍정마저 없으면 근과 진이 공하다/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으니 참된 자유인”이라며 “이제 대종사 각령전에 조계의 맑은 물로 청다를 올리오니, 감로법미로 무생락을 누리소서”라고 설했다.

'원행대종사 장의위원장'인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자광대종사는 영결사에서 “대기대용(對機大用)한 대종사의 가르침은 만고장공(萬古長空) 일조풍월(一朝風月)과 다르지 않았다”며 “그런 까닭에 대종사님을 알현한 사부대중은 영원의 시공간이 바람 부는 새벽달 속에 들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고 그리움을 전했다. 이어 원로의장 자광대종사는 ‘온 누리가 꿈이니/ 꿈속에서 꿈꾸지 말라//한바탕 부질없는 꿈 깨고 나면/아무 일도 없었던 몸이니라’라며 게송을 읊은 뒤, “대종사님께서 살아 생전 인생은 초저녁 풋잠에 꾼 꿈에 지나지 않은 것을 알면 부처이고, 이를 모르고 꿈 속에서 꿈을 꾸면 무지한 중생이라고 설하셨다”며 “부디 속환사바 하시어 꿈 속에서 꿈을 꾸는 미욱한 중생들에게 이 세상이 한바탕 부질없는 꿈일을 일깨워달라”고 청했다.

문도를 대표해 4교구본사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이 추도문을 전했다. 정념스님은 “오대산에서 탄허스님은 ‘원행’이라는 법명과 함께 ‘멍청이가 되라’는 첫 화두를 내려주셨다”며 “똑똑하고 영리했던 청년 이성휘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가르침이었지도 모르나, 스님은 평생 ‘멍청이’라는 이름을 가장 귀중한 보물처럼 가슴에 품고 살았으며, 한암 탄허 만하스님으로 이어진 오대산 삼화상의 가르침을 가까이에서 실천한 ‘아난다’와 같은 존재였다”고 역설했다.
정념스님은 “스님께서는 생전에 날뛰는 마음의 말인 ‘심마(心馬)’를 멈추고 지혜의 고삐를 잡으라 가르쳐주셨고, 또 들녘에 핀 꽃 한송이도 온 힘을 다해 피어나기에 소중하다며 모든 생명의 존엄을 일깨워주셨다”며 “이제 육신의 짐도 고문의 기억도 가람의 무게도 모두 내려놓고, 평생 그리셨던 화엄세계에서 이제는 멀리 가는 이(遠行)가 아니라 ‘이미 도착한 이’로 영원한 평온을 누리옵고, 우리는 스님께서 남기신 ‘멍청이’라는 이름의 고귀한 지혜와 자비심을 잊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영결식에 함께한 대중들도 조사를 전하며 원행대종사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중앙종회의장 주경스님은 “깊은 눈빛과 온화한 미소로 후학들을 맞으며 자애의 보살로 살아오신 큰 스님의 평소 가르침은 엄격하기보다 따뜻하였고, 멀리 있지 않고 늘 가까이 있었다”며 “이제 저희 사부대중은 대종사님이 걸으셨던 그 길을 따라 금강 같은 신심과 햇살같은 자비의 원력을 키우며 세상 속에서 불법을 밝히고 중생 속에서 수행을 이루는 길을 묵묵히 이어가겠다”고 서원했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등운스님(고운사 주지)은 “대종사께서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 수많은 인연을 맺으며 분주하고 치열하게 사셨으나, 이제는 ‘살아도 살지 않고, 죽어도 죽지 않는’ 본래 면목의 허공 경지에 드셨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대종사께서는 역사 정의를 세우고, 사회와 소통하며, 끊임없는 정진으로 조계종이 나아가야 할 현대적 수행자의 길을 밝혀줬다. 결국 스님의 삶은 종단의 후학이 본받을 만한 찬연한 사표였다”고 밝혔다.

10·27법난피해자모임 수석부회장 중하스님은 “대종사님은 고문 후유증으로 약한 몸을 가지고도 변함없는 불굴의 신심으로 종단을 걱정하시며 끝없는 정진으로 모든 불교 수행자달의 본보기가 되는 거룩한 한생 보살도를 행한 큰 스님이였다”며 “제행이 무상이요, 가고 옴이 없다고 하나 어찌 그리도 쉽게 가셨냐. 이제 우리 피해자들은 이제 누구를 의지해야 하나 참으로 눈물이 난다”고 비통한 마음을 표했다.

전국비구니회장 광용스님은 “스님께서는 후회 없이 피어나는 꽃처럼 사셨고, 세수 여든이 넘어서도 새벽예뿔과 탑돌이를 거르지 않으셨던 철저한 수행자이셨으니, 이제 무거운 법의를 벗으시고 본래의 적정 언적에서 편히 쉬라”고 추모했으며, 고광록 제4교구 신도회장은 “큰 스님이 남겨주신 지혜와 감로의 등불은 사부대중 마음 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니 무디 무량한 극락왕생을 누리시옵고, 언젠가 사바세계에 다시 오시어 어리석은 저희를 다시금 지혜의 길로 이끌어 달라”고 청했다.

제30호 무형문화재 이수자 국악인 강권순 씨의 추모공연과 월정사 연꽃합창단의 조가가 퍼지자 영결식장의 추모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참석 대중의 헌화에 이어 문도를 대표해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이 인사말을 전했다.

정념스님은 “저의 사형이신 자광당 원행대종사를 잘 모시지 못해 이렇게 홀연히 원적에 드시게 했다”며 “이 자리를 빌어 참회 인사를 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념스님은 직접 조문하고 법어를 내려준 종정예하 성파대종사를 비롯해 원로회의장을 주관한 원로의장 자광대종사, 종단을 대표해 총무원장 진우스님에게 특별하게 각각 감사 인사를 한 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 자리를 함께해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정념스님은 “원행대종사께서는 항상 ‘멍청이’라는 글귀를 화두 삼아 겸양하게 또 열정적으로 하심하며 살아오셨다”며 “그런 스님의 깊은 원력과 오대산 수행 가풍을 지키려 노력했던 열정을 잊지 않고 우리도 마음속 깊게 새겨서 앞으로도 정진하고 불사하고 산중 발전을 위해 혼신의 원력을 다해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영결식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 원로회의 의장 자광대종사, 수석부의장 보선대종사, 부의장 도후대종사, 원로의원 철웅대종사, 법등대종사, 일면대종사, 정여대종사, 동명대종사, 종열대종사, 명예 원로의원 현해대종사를 비롯해 전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스님, 호계원장 정묵스님, 전국비구니회장 광용스님 등이 참석했다. 또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등운스님(고운사 주지)을 비롯해 신흥사 주지 지혜스님, 법주사 주지 정덕스님, 수덕사 주지 도신스님, 직지사 주지 장명스님, 동화사 주지 선광스님, 불국사 주지 종천스님, 통도사 주지 현덕스님, 선운사 주지 경우스님, 조계사 주지 담화스님 등이 함께했다.




중앙승가대학교 총장 월우스님,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태성스님, 고시위원장 수진스님, 소청심사위원장 승원스님, 불교신문사 사장 원허스님 등도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중앙종회에서도 수석부의장 태효스님, 총무분과위원장 심우스님, 교육분과위원장 도성스님, 포교분과위원장 가섭스님, 사회분과위원장 진각스님(해인사), 재정분과위원장 태진스님, 호법분과위원장 삼조스님, 법제분과위원장 진각스님(통도사) 중앙종회의원 제정·덕현·일감·설암·설도·법원·천산·탄웅·대진·연규·현무·현담·도륜·덕운·각진·성제·탄보·각연·탄하·보륜·덕림·시공·보관·석산·석중·원각·혜산·대현·세림·해량·법성·덕유·우경·상원·허허·선안·철우·혜도·지인스님 등 의원 스님 대다수가 함께해 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총무원 총무부장 성웅스님, 기획실장 묘장스님, 포교부장 정무스님, 재무부장 여학스님, 문화부장 성원스님, 호법부장 도심스님, 사서실장 남전스님, 불교중앙박물관장 서봉스님, 미디어홍보실장 덕안스님, 아름다운동행 상임이사 법오스님 등 중앙종무기관 및 산하기관 스님들 참석했으며, 박정하 국회의원, 여중협 강원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 우상호 전 청와대 정무수석, 임성원 평창부군수 등도 참석해 추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