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PICK!] ‘붉게’ ‘노랗게’ 붓질된 거대한 화폭을 거닐다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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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25-10-26 15:33 조회98회 댓글0건본문
[주말 PICK!] ‘붉게’ ‘노랗게’ 붓질된 거대한 화폭을 거닐다
입력 : 2025-10-26 08:00

시간이 붉게 익어간다. 여름의 녹음은 한발 물러나고 나뭇잎은 색동옷으로 갈아입는 시기. 20일 강원 산간지역 중에서도 단풍이 가장 먼저 절정을 맞았다는 평창 오대산으로 향했다.
오대산(五臺山)은 강원 평창을 중심으로 홍천·강릉에 걸쳐 있는 산이다. 주봉인 비로봉(해발 1563m)을 비롯해 동대산·호령봉·상왕봉·두로봉 모두 다섯개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섰다. 단풍나무와 참나무 같은 활엽수가 많아 가을이면 산 전체가 오색으로 물들고, 울창한 숲 사이로 난 계곡은 그 진풍경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한다.
진부역에서 차로 10여분 달려 오대산 초입에 다다랐다. 가을 산은 이미 거대한 화폭이 돼 있었다. 단풍은 붉고 노랗게 붓으로 칠한 듯하고, 나무 사이로 내려온 햇살은 그 색감을 한층 다채롭게 한다. 갑자기 찾아온 찬 바람에 낙엽이 흩어질 때면 마음 한쪽이 쓸쓸하지만, 이 감성조차 이 계절의 매력인 듯하다.
“내가 사과 싸 왔어.”
“뜨거운 물은 나한테 있어.”
오대산길이 부지런히 단풍 구경 온 방문객들로 북적인다. 비닐봉지에 싸 온 간식을 나누고, 삼삼오오 모여 단풍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다. 가족 단위 여행객부터 산악회, 트로트 가수 팬클럽까지 저마다의 재미가 있어 보인다.

이날은 1일부터 새롭게 개방된 나옹선사 수행길을 걸었다. 상원사 주차장에서 출발해 덱(deck) 길을 지나 신성암 입구에 도착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수행길 시작점이 나타난다. 이 길은 신성암에서 북대 미륵암을 잇는 4.2㎞ 구간이다. 고려 후기 무학대사의 스승이자 3대 왕사로 알려진 나옹선사가 북대사에 머물며 수행하던 길을 찾아 복원한 것이다.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는 산길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등산객도 적다. 촉촉이 젖은 낙엽을 밟으며 걸었다. ‘쏴아아’ 신성골 폭포에서 쏟아지는 계곡물 소리와 이끼 가득한 바위, 숨을 들이쉴 때마다 들어오는 나무 냄새. 자연의 숨결이 오롯이 전해지는 구간이다. 산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말수도 줄어든다.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한걸음에만 집중한 채 묵묵히 걷다보면 잡념도 사라지는 듯하다.
“전망대까지 얼마나 남았나요?”
내려오는 등산객을 마주치면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건넨다. 처음 보는 이들과 짧은 인사만으로도 동질감이 생긴다. 혼자 등산을 왔다는 박중섭씨(63·경기 수원)는 “가을 산에 오면 오색빛 단풍뿐만 아니라 바람과 낙엽 냄새에도 흠뻑 취하게 된다”며 “비가 와서 잎이 금세 떨어져 버릴까 아쉽다”고 말했다.

봉우리마다 단풍을 뽐내는 오대산은 탐방로가 다양하다. 소금강산 코스는 전 구간 계곡을 끼고 있어 가을이면 울긋불긋 단풍과 함께 수려한 경관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자연의 절경인 만큼 길도 험한 편이다. 편도 13.3㎞ 길이에 암반이 많아 산행 장비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완만하고 가파른 경사가 골고루 있는 비로봉 코스는 등산객이 가장 많이 찾는 길이다. 상원사·적멸보궁 등 산행 중 볼거리도 많다. 박지희 오대산국립공원공단 해설사는 “10월 중순 이후 저지대에 오래 남아 있는 단풍을 감상하기엔 선재길이 참 좋다”며 “선재길 섶다리에서 월정사까지 산책하듯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오대산은 지혜와 복덕을 상징하는 문수보살 신앙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는 이달부터 ‘오대산 순례길 스탬프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단순한 종교 체험을 넘어 자연과 불교문화의 조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순례길은 두 구간으로 나뉜다. 제1구간은 옛 구도자들이 천년을 걸었던 ‘오대산 치유 순례길’로 월정사, 동대 관음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적멸보궁, 중대 사자암, 상원사를 지난다. 제2구간 ‘오대산 문화 체험길’은 국립한국자생식물원부터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월정사성보박물관, 한강시원지체험관 등 문화자원을 한번에 둘러볼 수 있는 경로로 꾸려졌다. 완주자에겐 기념품과 지역 호텔 숙박 할인 등 혜택이 제공된다.
한라산·지리산·계룡산·팔공산·북한산·무등산·내장산도 차례로 단풍 절정을 맞을 예정이다. 가을이 끝나기 전, 단풍의 머뭇거림을 놓치지 말자.
농민신문/ 김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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