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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불행은 스스로가 짓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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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해스님 작성일03-06-12 00:00 조회6,7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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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法本來自圓成 是心悉皆本具足
昨夜月落如西山 今朝日出亦東天
모든 법은 본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졌고
이 마음도 본래 모두가 원만히 갖추어졌네.
어제 저녁 달은 여전히 서산으로 졌음이요
오늘 아침 해 또한 동쪽에서 떠올랐네.

우리의 민속절기인 칠석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라고 합니다. 이 때가 되면, 까마귀는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나도록 머리에 돌을 이고 다리를 놓아 주었기에 까마귀·까치 전부 머리가 벗겨졌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또한 견우와 직녀가 일년에 한 번 만나는 날이어서 너무나 반가워 눈물을 흘리니 꼭 이맘때가 되면 비가 온다는 겁니다.
금년에는 아마 통곡을 하는 모양입니다.
본래는 까치나 까마귀가 다리를 놓아 주는 것도, 또한 견우, 직녀가 반가워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도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해는 언제나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게 마련입니다. 달 또한 그러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해가 뜨는 것도 아니고 해가 지는 것도 아니며, 달 역시 뜨는 것도 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지구가 움직이고 스스로 돌기 때문에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인간들 생각에 맞도록 해가 뜨고 진다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행·불행도 또한 본래는 내 자신이 지은 업의 결과로 자연히 굴러오는 것이지 내가 행복을 찾는다고 해서 반드시 구해지는 것도 아니고, 불행해지려고 해서 불행해지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습니다. 저 끝없는 무한한 옛적부터 지어온 업에 따라서 오늘의 모습이 정해지는 것뿐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고, 불행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이 지은 업은 생각하지 않고 남으로부터 행복이 오는 것으로 알고, 불행도 남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알기 때문에 행복해지면 다행이라고 깔깔거리고 웃고 또 불행해지면 남의 탓이라고 해서 원망하곤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우리 불자는 행복하든 불행하든 항상 내 자신을 돌보고 내 자신을 돌이켜서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큰 나무나 잡초, 곡식 등은 대개 씨앗에서 싹이 틉니다. 잘 아시다시피 벼나 보리의 낱알을 심어놓으면 적당한 온도와 습기가 있으면 싹이 터오릅니다.
그 다음에 뿌리를 내립니다. 뿌리가 땅에 있는 수분이나 영양분을 빨아들여 차츰차츰 커갑니다. 그것이 나중에 벼이삭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씨앗에서 싹이 나고 스스로 뿌리가 생겨납니다. 이것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가 이러하듯 우리 중생도 역시 자신의 전생 업에 의해서 처음엔 싹이 트고 그 업을 되풀이 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업으로 뿌리내려 이 세상에 살면서 점점 못된 짓도 하고 좋은 짓도 하게 됩니다.
욕을 차츰차츰 하다보니 ‘그 아무개는 입이 험하다’는
평을 받기도 하고, 싸움도 한두 번 하다보니 점점 늘어서 싸움꾼이 돼 버리고 깡패가 됩니다. 또 착한 일도 한두 번 하다보면 그것이 버릇이 되어 ‘아무개는 착한 사람이다’라고 좋은 얘기를 듣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는 어떻게 업을 짓고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져 갑니다. 악한 짓이든 좋은 짓이든 버릇이 됩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습(習)이라 했습니다.
습이란 우리말대로 보면 ‘버릇’입니다. 버릇을 어떻게 들이느냐에 따라서 내생에 오는 고통·불행 또는 기쁨·행복이 결정되고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받아야 합니다.
결국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행·불행과 나의 현실 역시 내가 이전에 지은 행동과 언어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전생과 내생이 어떠하냐는 물음에 대해 “금생에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아라. 그것이 내가 전생에 지은 결과이니라. 또한 금생에 내가 하는 행동을 통해 나의 내생을 보면 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는 내생에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굳이 어디가서 점치려고 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하는 언어·행동을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내가 극락에 갈 것인지 행복하게 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불행은 남이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고 내 자신의 언어와 행동의 결과로써 오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고 내생에 편해지려고 할 것 같으면 지금 우리 언어·행동을 잘하자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고 또 남에게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보이면 나중에는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남이 그것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이런 일화를 여러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옛날에 양 치는 소년이 산에서 양을 치다 심심해서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를 지른 거예요. 마을 사람들이 늑대가 나타났다는 말에 달려와서 보니 양 치는 소년이 웃고 있더란 겁니다. 재미가 나서 또 그랬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또 몰려와서 보니 역시 거짓말이라. 세 번째는 진짜 늑대가 나타나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니 저 소년이 심심해서 또 거짓말을 하는구나 해서 믿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오지 않더라는 거예요. 진짜 늑대가 나타났는데도 사람들이 오지 않아서 이 소년이 늑대에게 잡아먹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소년이 처음에 재미로 거짓말을 했지만 그것이 버릇이 되니까 진짜 늑대가 나타나도 사람들이 믿지 않은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언어·행동에 의해서 남이 신용할 수 있고 또 인격자로 받들 수 있는 반면에 또한 신용없는 사기꾼으로 전락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따라 이루어지느니
사악한 마음으로 말을 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그 사람을 따라 다니고
깨끗한 마음으로 말을 하거나 행동하면
행복과 보람이 그 사람을 따라 다닐 것이니라.

이 말씀은 부처님께서 《법구경》이라는 경전에 설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이것은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과 같이 모든 것은 내 마음가짐과 내 행동의 결과에 따라서 행·불행을 가져온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강원도 지방은 우리 나라 어느 지방보다도 태풍 피해가 큽니다.
이럴 때일수록 상부상조하고 서로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오늘의 이 재난이 그 누구가 준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지은 공동의 업임을 직시하고 내일을 위한 밝은 교훈으로 삼아 명심해야 할 줄로 압니다.
오늘을 통해 우리 자신의 행동을 냉정하게 보고 스스로를 비판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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