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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불광 6월호]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내려놓다-24기 은산 법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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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단기출가학교 작성일10-07-13 12:52 조회7,1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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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내려놓다
수행과 만나다 / 오대산 월정사 단기출가학교
2010년 06월 24일 (목) 16:32:57 송승환
   
내게 지난 십수년은 해야 될 숙제를 미뤄두고 놀고 있는 학생과도 같은 생활이었다. 내가 선택한 현실적인 삶은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거북하고 어색한 느낌이었다. 풀어야 할 숙제에 대한 미련과 학창시절 꿈꿔왔던 삶에 대한 동경으로 인해 심적으로 꽤나 공허함을 느끼며 지내왔다.
대학시절 광고사진을 전공한 나는 우연한 기회에 호주 시드니에서 ‘시드니 비엔날레 예술제’에 참가한 순수예술가의 작업을 도와주게 되었다. 이때 광고작업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작품의 깊이와 자유스러움에 빠져들었다. 방랑기 많던 나는 그들의 작업에 매료되었고, 이후 뉴욕으로 건너가 순수예술 공부와 작업을 병행하면서 자연스레 작품의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다민족국가인 미국, 특히나 뉴욕은 개성 있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들에게서 인간의 다양성과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흥미를 느꼈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인간의 외면에서부터 내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탐구하며 작품 활동을 했던 이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진지했으며, 작업에 가장 몰두했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작업을 하면 할수록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의 메시지에 대한 수많은 의문점이 생겼다. 이런 생각을 채 정리하지 못하고 발표한 작품의 이미지는 동양철학이나 불교철학에서 인용한, 나의 짧은 지식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허상일 뿐이란 자책에서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아버님 부고소식이 들려왔고, 다시금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지금도 풀리지 않는 질문을 던지며 방황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나를. 비우는. 여행.】
어느 날 월정사 단기출가학교 프로그램을 방송매체를 통해 접했을 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가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어느덧 참가신청을 해놓고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 그동안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던 풀지 못한 숙제들을 하나씩 꺼내어 놓으면서 이미 마음은 월정사로 향해 가고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부딪치며 적응하는 것에 익숙한 나였지만, 이번 단기출가학교 참가는 또 다른 의미에서 기대감과 설렘을 갖게 하는 여행이었다. 지금까지는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 배우고자 했다면, 이번에는 철저하게 내 자신을 비우고자 했다. 그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매순간 단기출가학교 프로그램에 충실히 임한다면 이룰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월정사의 첫날밤을 보냈다.
삭발식 이후 행자복으로 갈아입고 수계식 전까지, 본격적인 행자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것들에 대한 습의 시간이 있었다. 아직은 적응기간이라 지도하시는 스님들께서도 그리 엄격하게 대하시지는 않았다. 하지만 20여 년 전 군 생활 이후 이런 단체생활은 처음인지라 육체적·정신적으로 불편함을 느꼈다. 다행히 갈마(면접)를 통한 스님들과의 대화 이후 새롭게 마음을 다 잡고 수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정식으로 단기출가학교 행자가 되었다. 내게 주어진 한 달간의 시간 동안,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잊지 않고 하심과 묵언을 기본으로 수행에 정진하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예불을 마치고, 108배를 올린 뒤에 가지는 참선시간이 하루일과 중 가장 편안하고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참선법 강의를 통해 호흡법과 좌선의 화두에 대해 배우고 그에 맞춰 수행해보니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무심형 간화 방법은, 그동안 세속적인 것에 너무 젖어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잡념과 망상으로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할 수 없던 나에겐 가장 접근하기가 쉬웠다. 그 후 나는 잡념과 망상을 없애는 것, 즉 무념무상으로 마음을 철저히 비우는 데 초점을 두고 다른 수행 프로그램들(적멸보궁 삼보일배, 철야 정진 등)을 훨씬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행해 나갔다. 그 중 매일 아침·점심 공양 후 갖는 걷기명상과 오대의 산내암자들을 오르는 원족(遠足, 소풍) 시간은 실생활에서 어떻게 하면 유용하게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일러주었다.
차츰 행자로서의 일상에 익숙해지면서 반복되는 단조로움에 답답함이 느껴졌고 단체생활에서 불편함도 없지 않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행 도중 몸살 기운과 무릎 통증으로 인해 수행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
예전 유난히도 많은 분별심과 자의식에 사로잡혀 편견과 아집으로 뭉쳐있던 마음이 상당 부분 자유로워진 것 같아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비우면 비울수록 신선하고 참된 기운이 새롭게 그 자리를 채워주는 걸 느낄 수 있다.
이제 나는 지난 십수년간 풀지 못한 문제와 동경해왔던 삶 모두를 내려놓으려 한다. 분명 새로운 모범답안이 새로운 삶으로 제시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어쩌면 난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단기출가학교를 다녀온 지도 2주가 되어간다. 아직도 함께 수행에 참가한 스님들과 도반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생생히 기억난다. 참으로 소중한 인연들이다.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혼자서는 도저히 이뤄내지 못할 것이었기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한 내가 무엇을 하든 믿고 기다려 주는 아내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들 영준이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 이제부터 그들을 위한 삶을 살려고 한다. 그것이 결국은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라 믿으며, 아직도 남아있는 내안의 또 다른 나를 하나씩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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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 ː 호주 ‘KVB College of Communication’에서 광고사진을 공부하고, 시드니의 ‘Contemporary Art Gallery’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이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로체스터 공과대학교(Rochester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순수사진을 전공하였으며, 현재는 ‘Art & Deco’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월정사 ‘단기출가학교’ 안내

일정: 매년 네 차례(1월, 4월, 7월, 10월) 한 달(30일)간 진행

프로그램: 삭발식, 예불, 108배, 전나무숲길 걷기명상, 참선, 강의, 사경, 울력,
오대 원족, 발우공양, 오후불식, 노인요양원 봉사, 적멸보궁 삼보일배, 삼천배 등

문의: 월정사 033)339-6616, www.woljeong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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