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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코로나시대 불자들의 신행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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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21-03-23 09:54 조회1,6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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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현암스님은 불교수행을 응용한 명상이 육체와 정신에 좋은 영향을 끼쳐 결국 질병까지 극복하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며 심신 치유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은 월정사와 불교신문이 지난해 10월11일 월정사 경내에서 오대산 문화포럼 일환으로 마련한 명상체험 현장.
 

“삼보 예경…선한 마음 증장이 코로나 극복 기초”

어떤 존재도 악업 없애주거나
선업(善業) 빼앗아가지 못해
마음 안정되면 면역력 강화

MBSR, 만성통증 불안 건선
MBCT, 우울증 재발방지 효과

불교수행 응용한 심신 치유
대표적 명상 프로그램 ‘부각’

평상시 따뜻한 인사말과 미소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ㆍ연민
욕망 절제…‘알아차림’도 명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오르락내리락하며 계속 이어지고 있다. 확진자 가운데 많은 부분이 종교시설에서 나오고 있다. 방송에서 종교계라고 나오고 있지만, 불교계에는 확진자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불교계에서 확진자가 없는 것은 정부의 방역방침에 불교도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를 들자면 불교를 수호하는 호법선신(護法善神)들의 가호이다.

불보살ㆍ호법선신 가호 감사

 불교에서는 절집의 경내와 불자들을 위험으로부터 막아내는 호법선신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화엄경> 약찬게에도 많은 호법선신이 등장하고, 부처님 당시에도 많은 천신들이 청법자로 등장하여 법을 듣고는 삼보에 귀의하여 불법(佛法)을 옹호하는 호법신장이 된다. 이러한 호법선신들이 절 집안을 잘 지키고 있어서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는 이 시기에 불자들은 큰 피해를 보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불교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알고들 있지만, 불교에서는 절대적 창조신을 부인하는 것이지 신들의 존재를 인정한다. 불교의 세계관에는 욕계·색계·무색계 즉 삼계의 많은 천신들이 존재하고 있다. 다양한 신들 가운데 불법(佛法)에 귀의하여 삼보를 수호하는 신들을 호법선신 혹은 호법신장이라 부른다. 불교에서 이 신들은 우리 불자들과 주종의 관계에 놓인 존재들이 아닌, 단지 다른 업을 지니고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다 같은 부처님 제자이다. 코로나19의 재앙 속에서 불자들이 덜 피해를 보는 것은 수많은 불보살님과 호법선신들의 가호가 함께 하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불교계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적은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수행을 실천하는 신행 생활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다른 종교에서는 유일신을 하나 세우고 그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강조한다. 그러한 유일신은 창조주라 불리기도 하며 인간의 모든 생활에 관여하며 지배한다. 하지만 불교에는 특정한 존재를 만들어내는 창조주와 같은 존재에 대한 믿음은 바르지 않은 견해의 하나이다. 이러한 삿된 견해는 디가니까야(Dīgha Nikāya) 첫 번째 경인 <범망경(梵網經, Brahmajāla Sutta)>에서 62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연기(緣起)와 업(業)의 가르침


 불교에서 지금 자신의 존재는 타자에 의해 창조되지 않는다. 현재의 나(我)가 있음은 나 자신의 행위 즉 업(業, kamma)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업의 가르침은 창조주와 같은 인격적 절대자를 부정하고 모든 행위의 출발점을 자신에 두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에는 특정 상태를 생성해나가는 인격적 주재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법칙이 존재한다. 그러한 법칙이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와 업(業, kamma)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불자들의 신행 생활에는 절대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바른 믿음과 실천이 강조된다. 세상의 바른 법을 전해주신 부처님에 대한 믿음과 예경이 하나이고, 그 가르침에 따라 바른길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또 하나인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을 불교수행이라고 한다. 불교수행을 나타내는 빠알리(Pāli)어는 ‘bhāvanā’이고 이것의 본래적 의미는 마음을 가꾸거나(mental culture), 마음을 계발(mental development)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농부들이 밭을 가꾸듯이 수행자가 마음의 밭을 경작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불교수행이 서구에 전해지면서 명상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행해지고 있다. 명상의 유행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있었지만, 지금의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더욱더 많이 행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가져오는 위험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육체적·정신적 질병이다. 육체적인 질병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고 심하게 되면 중증의 폐렴으로 진행되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다음으로 정신의 질병인데 코로나19가 가져온 정신적 질병을 대표적으로 코로나블루(corona blue)라고 한다. ‘코로나19’와 우울감을 나타내는 ‘blue’가 합쳐져 생겨난 신조어이다.


 육체적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물 투여 등의 현대적 의학의 도움이 필요하고 정신적 질병에 대해서는 심리치료, 상담 그리고 명상 등이 많은 도움을 준다.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의 질병 대처는 복합적으로 이행되는 것이 효과적이다. 약물 등의 투여로 육체적 질병이 치료되면 그에 따른 정신적 평안도 가져올 수 있고, 상담과 명상 등으로 마음의 안정을 가져온다면 그 또한 육체적 질병의 치유를 위한 면역력 강화 등을 가져올 수 있다.


 육체적 질병과 정신적 질병 간의 상호 관련성이 연구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육체적 질병과 정신적 질병 간의 관계에 있어서 종래의 서구의 견해는 몸과 마음의 이원론(dualism)에 입각하여 둘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러한 견해들은 종래의 몸의 질병으로만 여겨지던 것의 원인이 부분적 혹은 전적으로 정신적 혹은 심리적 요인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면서 몸과 정신의 상호 관련성에 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관심의 고조는 정신과 육체의 상호 연관성을 강조하는 정신신체의학(psychosomatic medicine)이나 전체의학(holistic medicine)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근래에는 정신신경면역학(psycho-neuroimmunology: PNI)이 대두되면서 면역에 대한 정신적 영향력이 주목받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것이 명상이 면역에 끼치는 효과의 연구에 있다. 이러한 최근의 서양의학의 흐름은 불교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가졌던 관점이다. 부처님은 정신과 육체는 각각의 실재법(paramattha dhamma)으로 분리하여 볼 수 있지만, 둘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상호의존(mutual dependency) 혹은 상호관계(reciprocity)한다고 설 하신다.


정신과 육체의 상호 연관성에 기반하여 정신적 안정을 가져오는 명상은 육체적 질병의 치유에도 관여하는 것이다. 명상이 치유력을 가지는 것은 그 말의 어원을 보더라도 쉽게 이해된다. 명상(meditation)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치유의 개념을 가진 말 ‘mederi(cure)’에서 왔다. 이 어근에서 약품을 의미하는 ‘medecine’도 생겨난 것이다. 물리적인 약품을 ‘medecine’이라고 한다면 심리적인 약을 ‘medit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명상이 호흡의 양식, 혈액 순환, 심장 박동 등 다양한 신체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많은 보고가 있다.


질병치유에 미치는 명상의 효과는 불교수행을 기반으로 한 심신치유 프로그램의 효과에서도 알 수 있다. 불교수행을 응용한 대표적 심신치유 프로그램인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은 만성통증, 불안, 건선, 근섬유통에서 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병군에서 효과가 검증되었다. MBCT(Mindfulness Based Cognitive Therapy)프로그램도 우울증 재발 방지에 큰 효과가 있다. MSC(Mindful Self Compassion)프로그램은 긍정적인 정서를 증가시키고, 삶의 만족도를 향상하고, 우울증을 약화시킨다. 이처럼 명상은 육체와 정신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질병까지 극복하게 한다.

 

수행과 명상의 차이점

 이처럼 불교수행에서 시작된 명상은 유익함을 주지만 수행과 명상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아서 그 차이점을 잘 알아야 한다. 불교수행의 본래적 의미는 마음의 계발에 있다고 하였다. 이는 자신의 마음 밭에서 탐욕, 성냄, 어리석음과 같은 잡초는 뽑아내고, 지계, 보시, 자애의 마음과 같은 좋은 씨앗을 잘 뿌려 가꾸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는 불교수행이 단지 마음의 평안만을 좇거나 아니면 일상을 벗어난 초월적이고 불가사의한 능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교수행의 핵심은 선한 마음을 가꾸고 키워나가는 데 있지, 특정한 자세를 취하거나 신비한 체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불교수행의 본래 의미를 살린 명상이 되기 위해서는 선한 마음을 일으키고 확장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따뜻한 인사말과 미소를 건네는 것, 모든 존재에게 자애와 연민의 마음을 지니는 것, 욕망을 절제하는 것, 일상에서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명상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로 힘든 이 시기를 우리 불자들은 믿음과 실천으로 이겨나가야 한다. 특정 절대자에게 자신의 믿음을 인정받기 위해 매달려 소리칠 필요도 없다. 부처님께서는 업이 자신의 의지처가 된다고 하셨고, 어떤 존재도 악업(惡業)을 없애주거나 선업(善業)을 뺏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삼보의 위없는 덕성에 예경하고 불보살님과 호법선신들의 가호를 믿고, 선한 마음을 지니고 키워나가는 것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불자들의 바른 신행 생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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