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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성산(聖山) ‘오대산’ 세계유산으로 시대적 가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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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20-10-24 14:42 조회1,7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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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오대산 문화포럼 학술세미나
‘오대산의 세계유산적 특성과 가치’
제4교구본사 월정사가 주최하고 불교신문 등이 주관한 ‘2020 오대산 문화포럼’의 일환으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는 오대산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다양한 발제와 심도 있는 토론이 펼쳐지며 행사 의미를 더했다. 10월9일 오후1시 월정사 성보박물관에서 열린 오대산 학술세미나가 바로 그것이다.

‘성산(聖山) 오대산의 세계유산적 특성과 가치’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혜은 유네스코 종교제의유산위원장의 기조발표 후에 △세계유산 등재 프로세스와 보존관리(이동주 백제세계유산센터장) △오대산 문화유산의 활용(한숙영 이코모스코리아 부위원장) △오만진신신앙의 밀교적인 함의(장미란 동국대 교수) △중국과 한국의 오대산 비교(곽뢰 동국대 불교학술원) △월정사와 상원사(중앙승가대 교학처장 자현스님) 등의 연구결과가 선보여 주목됐다.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은 “성산 오대산은 1400여 년 긴 세월을 생명, 평화, 치유의 터전으로써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오대산 문화포럼에서는 녹색미래를 향한 인류의 길을 함께 모색하는 귀중한 시간을 만들고자 했다”면서 “오대산의 오랜 명상수행 전통은 생명이 경시되고 개인화되며 약화되는 공동체 의식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통해 생명과 치유라는 시대적 가치로 회향하는 사회적 명상을 선도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다음은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된 발제문을 요약 정리했다.
 



‘성산(聖山) 오대산의 세계유산적 특성과 가치’라는 주제로 10월9일 제4교구본사 월정사 성보박물관에서 열린 오대산 학술세미나에서 이동주 백제세계유산센터장이 발제하고 있다.
| 신라오대산 기록에서 확인되는 상원사와 월정사의 분절(分節) 양상 검토
중앙승가대 교학처장 자현스님

오대산 관련 자료들은 하나의 단일 체계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상원사와 월정사의 두 흐름으로 분절된 측면이 후에 통합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를 방증하는 문헌이 오대산에 대한 개괄적인 총론이라고 할 수 있는 <대산오만진신>이다. <대산오만진신>에는 상원사와 월정사의 두 가지 문헌에 입각한 자료들이 혼재되어 있는데, 이는 이 기록이 보천·효명과 신효에 대한 독립 전기자료의 성립 이후에 재정리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임을 분명히 해준다.

오대산 신앙구조의 확립은 보천·효명과, 관련해 상원사에서 발생하는 문수의 36변현과 오대의 오만진신 출현에 입각한 오대오만진신신앙이다. 이로 인해 705년 성덕왕에 의해서 상원사가 창건되고, 이후에 오대오만진신신앙이 정착하게 된다. 오대오만진신신앙의 성립은 뒤에 성립하는 신효를 필두로 하는 월정사 쪽 기록에 영향을 미친다. 즉 오대산 문헌의 성립은 개창조사인 자장 이후에 보천·효명 그리고 신효를 중심으로 하는 신의와 유연의 구조가 성립한 다음에, 최종적으로 전체적인 총론인 <대산오만진신>이 재정리 되는 것이다.

또 상원사와 월정사가 서로 간의 뚜렷한 연결점이 확보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양자가 상호 분절되어 시작되었다는 점은, 상원사와 관련된 기록 속에 확인되는 하원의 문수갑사가 월정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준다. 이는 월정사와 관련해서, 보천과 효명을 제외하는 ‘사성소주지사(四聖所住之寺)’라는 특징적인 표현이 존재한다는 점을 통해서도 자못 분명해진다.

이와 같은 연구접근을 통해, 기존에 오대산이라는 전체적인 범주 속에서 상원사와 월정사가 존재한다는 인식은, 이제 성립 시차에 의한 적층적인 구조로 새롭게 수정된다. 이는 오대산의 중심이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이동했음을 의미하는 것인 동시에, 오대오만진신신앙의 시원인 상원사가 오대산 신앙의 구심을 잃지 않는 오대산만의 특징적인 구조에 대한 이해를 보다 명료하게 해준다. 이런 점에서 본 연구는 기존의 오대산 연구와 변별되는 특징을 확보하고 있다고 하겠다.

| 오만진신신앙(五萬眞身信仰)의 밀교적 수용과 호국적 의미
장미란 동국대 교수

오만진신신앙은 신라의 독자적인 신앙체계이다. 이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와 <오대산사적기>에 남아 있다. 이 신앙은 <삼국유사>는 보천의 유언에 의해, <오대산사적기>는 성덕왕이 된 효명에 의해 완성된다.

오만진신신앙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7세기에 활약한 밀교승인 밀본, 명랑, 혜통의 활동에서 신라에 수용된 밀교의 성격과 오만진신신앙체계에 수용된 밀교적 요소와 신라적 특성에 대해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그 의미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신라에 밀교를 전파한 세 밀교승은 초기밀교경전에 해당하는 <관정경>, <불정존승다라니경>, <다라니집경>을 기반한 독경, 주술 등 다라니의식적인 방법으로 왕실의 병 치료, 국가 위기 극복, 민생 구제 등에 힘썼다.

이러한 현세이익적이고 호국적인 성격의 밀교 수용은 오만진신신앙체계에서도 드러난다. 오만진신신앙체계에서 밀교적 수용을 살펴지는 부분은 중국의 오대산 문수신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과 남대 팔대보살을 제외한 4방불의 내용과 배치구조가 같다는 것, 그리고 주독야념(晝讀夜念)의 의례를 중시하고 다라니 독송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서이다.

마지막으로 오만진신신앙의 의미를 살펴보면 신앙의 대상이 불보다는 보살이 중심이 되어 불보살들이 오대산에 상주한다는 보살주처신앙이라는 것과 의례체계를 갖추어 일상화한 것, 그리고 불국토 사상을 기반으로 민생의 안위와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를 진호하려는 호국적인 성격이 강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불보살들을 하나의 체계내에 수용함으로써 통불교적인 면을 보여줌과 함께 신라인들의 불교신앙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오대산의 오만진신신앙체계의 성격은 이후 점찰의례 등에 영향을 미쳐서 더욱 정교하게 발전되며, 한국불교 성격의 축소판처럼 한 눈에 보여주는 신앙체계라고 할 수 있다.
 

제4교구본사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이 오대산 학술세미나에 참석해 발제를 경청하고 있다.
 

 

| 중국과 한국 오대산 성지신앙(聖地信仰)의 비교
곽뢰 동국대 불교학술원 전임연구원

중국 오대산은 당 왕실의 지원과 성지화 정책에 의해 성지화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완전한 호국신앙의 체계로 재편해낸 것은 불공(不空)과 징관(澄觀)의 공이 크다고 할 것이다. 결국 징관은 금강계만다라에 근거하여 화엄사상과 밀교사상을 결합하고 문수신앙을 다시 확립하였는데, 이것은 단순히 ‘문수보살의 주처’로 인식된 오대산 신앙 초기의 성격을 탈피하여 오대산 전체 즉 문수보살의 화현(化現)이라는 인식으로 더 구체화 시킨 것이다.

반면 신라의 오대산신앙은 ‘문수주처(文殊住處)로서의 오대산(五臺山)’이 먼저 상정된 것이 아니라, 이미 성립되어 있던 산악숭배에서 중국 오대산신앙을 수용되었고, 신라의 오대산문수신앙은 당의 오대산 문수신앙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대에 이르러 이렇게 문수보살의 주처로 자리 잡은 오대산 신앙에 변화가 나타났다.

신라하대에서 실천적인 신앙이 유행한다는 점이 있다. 신라하대에는 특정한 경전의 가르침만을 중시하면서 이론보다는 실천적인 신앙을 중시하는 불교가 불교계의 주류로 등장하였다. 이와 같은 변화는 중대에서 하대로 넘어가는 신라 사회의 정치, 사회적 변화와 시기적으로 상응하는 것으로서 정치, 사회적 변화와 사상계의 변화가 동시적으로 발생하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통일신라시대에서 관음신앙, 지장신앙, 아미타신앙, 석가신앙, 화엄신앙 등 신앙이 이미 신라로 전래되었고 모두 신라화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신라 중대의 화엄적인 문수신앙에서 하대의 오만진신신앙으로 발전되는 토대가 되었다.

신라하대의 오대산문수신앙은 당의 오대산문수신앙의 밀교적인 체계와 달리 각 신앙의 전래 및 정착 과정을 통해 본토화가 된 오만진신신앙이다. 이것은 한국 오대산 성지신앙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전체가 문수신앙으로 단일화 돼 있는 중국 오대산과 변별되는 신라 오대산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즉 ‘오대산신앙=문수신앙’의 구조는 중국적인 기원을 가진 것이지만, 신라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신라식의 변형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불 수 있다.

| 세계유산의 등재절차와 과정
이동주 백제세계유산센터 센터장

세계유산의 지정 및 관리 주체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세계 평화와 인류 발전 증진을 목적으로 교육, 과학, 문화 등 지적 활동 분야에서의 국제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창설된 유엔 전문기구인 유네스코(UNESCO)다. 세계유산은 세계유산협약이 규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 그 특성에 따라 자연유산(NaturalHeritage),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 복합유산(Mixe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으로 구분한다.

문화유산은 크게 기념물(monuments), 유적(sites),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s), 건조물군(cultural landscapes)으로 나눈다. 세계유산의 등재기준은 10가지로 문화유산(1~6), 자연유산(7~10)으로 구분한다. 세계유산 등재를 하기 위해서는 1단계 기초학술 조사, 2단계 기초학술 조사, 국내외 학술회의 개최, 추진기구, 관련 협의체 결성 및 운영, 세계유산 잠정목록 신청서작성, 세계유산 잠정목록 대상여부 심의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어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이후 에는 1단계 학술 심화연구, 2단계 학술 심화연구, 국내외 학술회의, 유산 정비 및 주민참여사업추진(지속적), 등재신청서 초안을 작성해야 한다. 또한 세계유산 등재 신청후보 선정 이후 에는 국문 등재신청서와 유산도면, 사진, 영상 등 부속서류를 작성하고 최종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 제출대상 선정 이후에는 영문 등재신청서 작성, 영문 부속서류를 작성한다. 세계유산 등재신청서 제출이후에는 전문가 현지실사를 준비하고 보완 및 추가요구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 세계유산의 활용과 오대산
한숙영 이코모스코리아 부위원장

세계유산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에 따르면 세계유산은 생태, 문화적으로 지속 가능한 활용, 유산의보편적 가치를 완전히 존중하는 활용, 지역주민의 삶의 질과 웰빙을 향상시킬 수 있는 활용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 및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통합관리계획과 관광관리계획 및 방문자 관리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세계유산 및 관광편의시설 현황을 파악하고 세계유산 특성에 따라 지역을 구분해야 한다. 관광수익금 일부를 지역 보존과 개발을 위한 기금으로 활용하는 등 주민이 주체가 되는 지역공동체 참여를 통한 세계유산 활용이 가능해야 한다. 즉 환경훼손을 최소화 하면서 여행지의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고 현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문화를 해치지 않는 지속가능한 세계유산 관광이 가능해야 한다.
 

“조선왕조 의궤·실록 ‘환지본처’로 정체성 확립”

10월10일 월정사 대법륜전에서 ‘문화재 본지환처와 문화분권-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궤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열린 학술세미나.

 


2020 오대산 문화포럼 학술세미나 
‘문화재 본지환처와 문화분권’

‘2020 오대산 문화포럼’에서는 오대산 사고에서 약탈돼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조 의궤·실록의 제자리 찾기를 조명하는 세미나도 열려 눈길을 끌었다.

10월10일 월정사 대법륜전에서 ‘문화재 본지환처와 문화분권-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궤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의궤의 제자리 찾기와 문화분권(최종모 (재)강원도문화재연구소장) △왕조실록·의궤 박물관과 오대산 사고의 활용방안(차장섭(강원대 교수) △조선왕조실록·의궤의 문화콘텐츠화 방안(권순석 문화컨설팅 바라 대표) 등이 소개됐다.

여기에 정일섭 강원도 문화관광체육국장, 김진석 강원도의회 운영위원장, 박정애 강원대 교수, 김충현 춘천불교방송 총괄국장, 이욱환 평창문화원장 등이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다음은 이날 선보인 발제문을 요약 정리했다.

| 조선왕조실록·의궤의 제자리 찾기와 문화분권
최종모 (재)강원도문화재연구소장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과 조선왕조의궤 오대산사고본은 오대산사고지에서 약탈되었으나 환수된 곳은 오대산사고가 아니라 중앙의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관리하게 되었다는 점은 앞으로 이 실록과 의궤를 제자리에 찾아 놓아야하는 많은 고민들을 가지게 한다. 당시 실록과 의궤가 보관되던 사고가 복원되었으나 그곳에 보관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고 당시 체제에 따른 인적 구성을 가지고 관리를 지속적으로 하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발제내용을 통해 실록과 의궤의 제자리 찾기를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합리적인 논리의 개발 그리고 법적 타당성이 우선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먼저 실록과 의궤를 제자리찾기를 위한 실질적 주체가 있어야 하겠고 이를 지원할 지원정책과 예산의 지원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오대산사고본을 찾아오고 난 뒤 보관하고 관리할 시설, 인력, 예산 등의 인프라를 세밀하게 갖추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고, 세 번째로 이들 오대산사고본을 활용하고 대국민서비스를 확대할 프로그램의 개발과 지속적으로 홍보, 교육, 국민이 함께 체험하고 향유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오대산사고본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기 위한 대정부 설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떠한 법적 근거와 행정력 그리고 타당성을 확보하여 설득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이를 어떻게 ‘문화분권’과 같은 정부시책 등의 어젠다와 연계된 논리를 가지고 오대산사고본 제자리 찾기를 현실화할 것인가가 오늘 발제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고민하여야 할 부분이다.

| 왕조실록·의궤 박물관과 오대산 사고의 활용방안
차장섭 강원대 교수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등 오대산사고에 보관되었던 자료, 즉 진본(眞本) 전시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왕조실록·의궤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숙원사업은 일본에서 환수된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의궤가 본지환처(本地還處)하는 것이다. 현재 이 사업의 실현 가능성은 희박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를 포기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과제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왕조실록·의궤 박물관이 조선왕조실록 및 의궤를 소장하고 있는 소장처와 협조하여 매년 진본(眞本)을 대여해 와서 전시하는 기획전시를 실행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고궁박물관과 협의하여 환수된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를 전체를 전시하는 것이 그러한 사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자료를 비롯해서 평양 김일성대학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전시함으로써 조선왕조실록 및 의궤박물관이 오대산 사고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왕조실록 및 의궤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장기적으로는 조선왕조실록 및 의궤를 연구하는 부설기관을 만들어 보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오대산 사고에서 반출되었다가 환수된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의궤의 본지환처(本地還處)를 위해 오대산 사고와 왕조실록·의궤 박물관은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지난해 개관을 하여 아직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박물관의 개관을 계기로 왕조실록·의궤 박물관이 우리나라 기록문화유산의 중심 연구기관으로 발전할 것을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 월정사 증심의 불교계뿐만 아니라 민(民)과 관(官)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 조선왕조실록·의궤의 문화콘텐츠화 방안
권순석 문화컨설팅 바라 대표

문화콘텐츠는 문화의 원형 또는 문화적 요소를 발굴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와 가치(원형성, 잠재성, 활용성)을 찾아내어 매체(온오프라인)에 결합하는 새로운 문화의 창조과정이다. 매체와의 결합을 통해 만들어진 문화콘텐츠는 드라마, 영화, 축제, 관광, 도서, 디자인, 게임, 정보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24일 열린 ‘디지털 뉴딜 연계 문화콘텐츠산업 전략 보고회’에서 “콘텐츠는 한국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열쇠”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맞아 디지털 콘텐츠, 비대면 콘텐츠 시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자연과 종교 그리고 역사인문 자원이 결합된 콘텐츠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그 자체로의 문화콘텐츠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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